마지막으로 일본 RPG 를 진득하게 플레이 했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로스트 오디세이가 문뜩 떠오르긴 하지만 손꼽을만한 추억으로 기억하기엔 다소 모자라다. 21세기들어 장르가 급속도로 하향세를 탄 영향도 있고, 게임 엔딩 한 번 보자고 수십 시간씩 시간을 투자할 근성이 사라진 탓도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면. 정말 즐겁게 플레이 했던 마지막 일본 RPG 의 기억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2007년경 접했던 진 여신전생 3 녹턴 매니악스를 주저 없이 꼽는다. 풍기는 오라가 여러모로 구색이 당기는 시리즈였음에도 언어의 장벽이 앞을 가리고 있던 시리즈의 본편이 모르는 새 한글화되어 있었고, 뒤늦게 빠져든 녹턴의 세계는 환상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나 약간 늦게 접하게 된 진 여신전생 4 는 다시금 일본 RPG 의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던져주었다.




병신 같지만 재미있어


‘병신 같지만 멋있어’ 라는 다소 철 지난 유행어가 있다. 결론부터 깔고 시작하자면 이 유행어에 부합하는 게임이 진 여신전생 4 다. 여기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 한데, 외적으로 내뿜는 분위기나 형태가 병신 같은 외형적 병신이 아닌, 게임 내적 요소를 하나 둘 짚어보면 도대체 그 명작 시리즈를 뭐 이따위로 만들어놨나 싶을 정도로 불친절하고 조악한 부분이 꽤 있다. 외적 병신을 까뒤집어보면 진국인 게임이 한둘이 아님과 내적 병신이 진정한 병신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되새겨보면 문제는 다소 심각해진다. (어디 게임만의 문제랴) 하지만 저 유행어의 포인트는 멋있다는 결론이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진 여신전생 4 는 저 유행어에 잘 부합하는 게임이다.


동료를 얻어



육성 시켜


좋은 재료로 쓴다 ...


4편의 재미 요소 중 으뜸은 시리즈 전통의 특징인 악마 합체 시스템이다. 주인공이 동료로 맞이한 악마들을 조합해 새로운 악마를 얻어내는 이 시스템은 기존까지 결과물의 퀄리티 보장이 어려웠던 것에 반해, 결과물에게 재료 악마의 어떤 스킬을 계승 시킬 것인지 유저 마음대로 선택이 가능하다. 덕분에 결과물에게 원하는 스킬이 떨어지지 않으면 재료를 사던가 최악의 경우 육성부터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져 악마 합체의 재미를 보다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 가시적 목표의 명확한 제시는 불안함이란 스트레스를 날려버려 악마 육성의 재미를 극대화 시킨다. 또한 유저가 보유한 악마 재료들의 현황에 따라 어떤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검색 시스템의 보조는 아이 쇼핑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시리즈 최대 악마 출현은 하드 유저의 수집 욕을 고취시킨다. 본래 여신전생 시리즈 재미의 절반은 이 악마 합체 시스템이었고, 진 여신전생 4 는 시리즈 트레이드 마크만큼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다듬어놨다.




다만 스토리 전개는 가부의 방향을 판단하기가 애매하다. 결말은 왠지 뻔하지만 과정에 대한 호기심 자극 요소와 특유의 혼돈적 세계관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잘 살아 있고 이 혼돈의 세계 이야기는 즐겁다. 다만 주변 인물들의 개성이 너무 평면적이고, 그 평면적 개성을 바탕으로 한 주인공에 대한 질문 분기나 타이밍이 너무 이분법적이라 세계관이 조장하는 가치관에 대한 의문과 대비되며 부조화를 형성한다. 이 어긋남이 극대화되는 시점은 질서, 혼돈, 중립으로 나뉘는 3가지 멀티 엔딩의 결과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분기인데, 유저의 선택권은 단 두 가지다. 이는 정황적으로도 구성적으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전작이 주변 인물들의 매력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어필하며 세계관과 잘 어우러졌던 것과 대비하면 정말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게임의 일반 요소가 엉망


주인공의 여정 시작과 동시에 유저에게 고통을 주는 진 여신전생 4 의 최대 단점은 난이도 분포 조절의 실패다. 외전들을 포함한 여신전생 시리즈들이 극악 난이도로 정평이 나있는 시리즈라고는 하지만, 넋 놓지 않는 이상 첫 전투 지역에서 전멸당하는 사태가 발생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4편은 실제로 그것이 일어난다. 만만치 않을 것을 예상했기에 HP 가 너덜너덜한 상태로 돌아다닌 것도 아니다. 이렇듯 갑갑함이 밀려오는 초반과 달리 중반 즈음에 도달하면 살만한 세상이 도래하고, 후반부로 가면 과장 좀 보태서 무쌍을 찍는다. 난이도 곡선이 후반부로 갈수록 반드시 어려워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 초반이 난이도의 정점으로 시작하여 하락하는 형태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형태임이 부정할 수 없다.

이 같은 난이도 조절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전편에서 완성된 전투 시스템에 첨가된 순간 버프 요소 때문이다. 턴 베이스 전투에서 행동 결과에 따라 자신의 행동 턴이 깎이기도 늘어나기도 하는 기본 시스템은 녹턴부터 대대로 이어지는 여신전생 전투 시스템의 마스코트인데, 턴의 가감뿐 아니라 공격을 효과적으로 성공하거나 방어할 경우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일시적으로 발동하는 씨익- 버프는 해당 캐릭터의 능력을 증가시켜 턴의 손해를 본 상대에게 엎친 데 덮친 격의 위기를 선사한다. 분명 전투의 통쾌함이 증가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는 이 시스템이 초반부터 유저의 적에게 발동되도록 방치했으니 헐? 하는 사이에 유저가 전멸하는 사태가 쉽게 발생하는 것이고, 유저의 상성 대비책은 점점 늘어나고 보스전은 대게 일 대 다 전투로 이뤄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순간 버프 발동의 확률이 후반으로 갈수록 유저 쪽으로 치우쳐져 난이도가 갈수록 쉬워지는 경향이 있다. 이 시스템의 긍정적 요소를 무시할 순 없으니 향후 시리즈에서 조건의 조절 등으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초반의 무시무시함을 이겨낸 유저들에게 엔딩의 순간까지 고통을 주는 단점은 게임의 불친절함이다. 도쿄 월드 필드에 들어서면 갈 수 있는 길과 없는 길의 구분이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너무 힘들뿐더러 구불구불하게 꼬여있고 구역 입구에선 해당 입구가 어디로 통하는 입구인지 표시해주지도 않는다. 3DS 하단 스크린에 미니 맵이 제공되기는 하지만, 이걸 보라고 제공한 건지 하단 스크린 놀리기 뻘쭘하니까 떼우기용으로 제공한 건지 알 수 없다. (아이고 의미 없는 미니맵) 그나마 구역 필드에서 제공되는 미니 맵은 나은 편이지만, 결계 구역은 미니 맵이 제공되지 않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문제는 이 결계 구역이 초반부터 종반까지 모든 결계 구역이 지겹게도 동일한 배경으로 성의 없이 통일되어 있고, 갈림길을 제외하면 위치 판별에 도움이 될 어떠한 표시도 제공되지 않는 통일된 복도 구조라 정처 없이 길을 잃기 딱 좋다. 미니 맵이 제공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니 맵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위치 구분을 실마리 요소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것이 없으니 유저는 (이라 쓰고 ‘나는’ 이라 읽는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사소하게는 키 배치에 있어서도 자동 전투 키와 이벤트 씬의 대화창 제거 키가 왜 같은 키일까? 빠른 진행을 위한 의도 기능과 그림 한번 자세히 보려는 일시 정지 의도 기능이 같은 키에 묶여져 있어 대사 스킵을 위해 습관적으로 R 키를 누르며 혼란을 겪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나마 자동 전투가 존재하는 것은 정말 다행이지만.

리뷰 초반의 결론을 다시 풀어보자면, 여신전생 시리즈가 이제껏 어필해온 재미들은 다소 부족한 면도 있지만 살릴 것은 나름 잘 살렸음에도 게임의 기본 요소가 워낙 개차반이라 좋은 평가를 내리기엔 무리가 있는 게임이 진 여신전생 4 다. 여신전생 시리즈를 줄 곧 즐긴 유저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고, 이 게임으로 명작이라 불리는 여신전생 시리즈에 입문하려는 유저라면 곳곳에서 좌절을 느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 여신전생 4 에서 3DS 의 특징인 입체 효과를 기대하지 말자. 입체 효과가 특별한 연출이나 기능을 제공하는 게임이 아닐뿐더러, 입체 효과를 최하로 설정해도 5분 이상 화면을 보기 어려운 피로함이 느껴진다. 닌텐도 게임기의 특징은 닌텐도 게임으로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진리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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