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의 베이퍼웨어하면 단번에 떠오르며 수없이 화제가 되었던 대표적 게임은 두말할 것 없이 3D 렐름즈의 듀크 뉴켐 포에버입니다. 1997년 E3 에서 최초 제작 발표 후 개발 엔진을 몇번씩 갈아 엎으며 10년이 넘도록 '여전히 제작 중' 이라던 이 게임은 올해 5월 개발진이 먼저 해고된 후 3D 렐름즈가 폐쇄되면서 향후 개발이나 발매가 어찌될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더구나 돈에 얽힌 법정 소송까지 진행 중에 있죠. 듀크 뉴켐 포에버의 경우 그나마 제작사에 의해 공식적인 제작 발표가 있었고 개발 중인 실기 영상이나 스크린 샷이 아주 가끔씩 공개되었기에 그나마 재료라도 있는 게임계 떡밥 행세를 합니다만, 제작사의 공식 입장은 언제나 'No' 혹은 'No Comment' 로 일관되며 눈에 보이는 재료가 없음에도 줄기차게 거론되는 게임계 또 하나의 거대 떡밥이 있습니다.

바로 스퀘어 에닉스의 파이날 판타지 7 리메이크 입니다.


장황하게 (..) 파이날 판타지 7 원작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게임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이름 한번쯤은 들어봤을 일본식 RPG 게임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의 7번째 넘버링 타이틀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요.) 1997년 1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용 게임으로 일본에서 첫 발매 후 같은 해 북미와 유럽으로 발매되었고 일본내 330만장, 전세계 990만장의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시리즈 최고의 히트 타이틀이라 볼 수 있습니다.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가 그 이전부터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아왔다고는 합니다만 본격적으로 그 이름을 떨친 타이틀이 바로 이 7편입니다.

콘솔 시장의 판도를 뒤엎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단순히 수치상으로 많이 팔렸다는 이유만으로는 파이날 판타지 7 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잠시 화제를 돌려보면 90년대 중반 게임기 시장은 CD 라는 매체를 활용한 게임기가 없진 않았지만 닌텐도가 롬 카트리지를 사용한 슈퍼 패미콤으로 지배하다 신기종 카트리지 게임기인 닌텐도 64 로 그 지배권을 이양하려는 과도기였고, 그런 닌텐도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세가 새턴과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입니다. 도전자와 챔피언의 기능적 차이점은 바로 CD 라는 매체와 롬 카트리지로 볼 수 있는데, 이전까지 닌텐도 기종으로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를 발매하던 스퀘어는 파이날 판타지 7 의 발매를 닌텐도 64 가 아닌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발표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닌텐도의 지배력은 굳건했기에 제작사 스퀘어에겐 '배신자 스퀘어' 라는 낙인까지 찍히며 거부 여론이 확산될 정도였죠. 하지만 결과는 스퀘어 만세로 바뀝니다. (페이비안님의 파이날 판타지의 역사 연재를 보시면 파이날 판타지 7 플랫폼 결정에 대한 스퀘어의 내부 고민을 좀 더 자세한 알 수 있습니다.)

파이날 판타지 7 팬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그 장면


97년 발매된 파이날 판타지 7 은 3D 성능이 뛰어난 플레이스테이션의 성능과 CD 매체의 용량을 마음껏 발휘하며 유저들이 이전까지 전작들을 통해 봤던 것과는 다른 신세계를 선보였고 이는 폭발적인 호응 속에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파이날 판타지 7 열풍 원인은 게임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호응도 컸지만 2D 중심의 저용량 게임 세계가 3D 중심의 대용량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 신세계의 매력을 적절한 타이밍에 가장 멋지게 집결시켜 표현한 게임이 파이날 판타지 7 이였기 때문입니다. 그 임팩트 덕분에 3D 폴리곤 캐릭터와 멋진 CG 영상이 아우러진 게임의 기본 구성은 절대적 트렌드로 자리잡았고 이는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게임들이 기본으로 여기는 요소들입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유럽에서 게임 = 플레이스테이션 이란 공식으로 통할 정도로 전세계적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프렌차이즈의 대성공 이룩의 중요한 발판이 됩니다. 3D 와 CG 연출의 활용은 언젠가 올 수밖에 없는 순서였지만 그 순서를 불러온 것이 파이날 판타지 7 이고, 반면 그 순서를 인정치 않았던 롬 카트리지 용량의 한계를 가진 닌텐도 64 는 게임기 시장의 왕자를 소니에게 넘겨주게 되죠. 파이날 판타지 7 은 '배신자 스퀘어' 가 결과적으로 한 시대 게임 트렌드의 대세를 확립시켜버린 사건 아닌 사건입니다.

파이날 판타지 7 등장 캐릭터


그래서인지 파이날 판타지 7 은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지금까지 놓여있고 팬층의 충성도가 남달라 시리즈의 다른 타이틀들과는 달리 파이날 판타지 7 프렌차이즈만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들이 선보였고 아직 구체적 예정이 발표되진 않았지만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많이들 보셨을 CG 무비 '파이날 판타지 7 어드벤트 칠드런' 을 비롯해서 PS2 로 발매된 더지 오브 켈베로스 : 파이날 판타지 7, PSP 로 발매된 크라이시스 코어 : 파이날 판타지 7 등.. 이들은 파이날 판타지 7 등장 캐릭터와 세계관을 공유하며 게임의 경우 게임성이나 완성도가 뛰어나고 말고를 떠나 존재 그 자체만으로 팬들에게는 의미있는 타이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를 전설로 비유하자면 '파이날 판타지 7' 은 신화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원작 이야기가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네요. 이제 리메이크 떡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신화와도 같은 파이날 판타지 7 인 만큼 팬들의 맘이야 최신 기술로 환골탈태한 모습의 파이날 판타지 7 을 다시 즐겨보고 싶은 욕구야 넘쳐날껍니다. 그런 이유로 파이날 판타지 7 리메이크설은 PS2 시절부터 은근히 지속돼 왔습니다. 이는 파이날 판타지 7 어드벤트 칠드런 개봉 덕분에 한때 근거없는 루머가 일파만파 퍼지기도 했었죠. 하지만 PS2 시절까지만 해도 말그대로 팬들의 순수한 '바램' 의 표출 정도였던 이 리메이크 설이 PS3 시절로 넘어오면서 반드시 이뤄져야 할 '염원' 수준으로 바뀝니다. 이 염원을 자극한 것은 E3 2005 에서 소니가 PS3 테크니컬 데모 시연을 위해 공개한 파이날 판타지 7 도입부 실기 영상이긴 한데 갈수록 분위기는 묘해집니다.



스퀘어를 지나 스퀘어 에닉스 합병 후 적어도 PS2 시절과 PS3 테크니컬 데모 공개 시점까지만 해도 스퀘어 에닉스는 파이날 판타지 7 개발 루머에 대해 언제나 No 라며 일축해왔습니다. 하지만 게임기 시장에서 PS3 의 입지가 점차 약화되가고 닌텐도 왕의 귀환 시대를 맞이하면서 (사실 이전 닌텐도 시절과 성격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파이날 판타지 7 리메이크 루머는 이전과는 달리 빈번하게 제기되어 왔고 한술 더 떠 스퀘어 에닉스 마저 No 라고 했다가 No Comment 라고 했다가 혹은 '팬들이 원한다면 언젠가는' 이라는 등 의미심장하게 비칠 수 있는 아리송한 태도로 팬들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파이날 판타지 7 리메이크설은 근거할만한 어떤 형태의 가시적 결과물이 나온적은 물론 추상적 계획조차 제대로 발표된 바가 없는 말 그대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파이날 판타지 7 세계관을 소재로 한 CG 영화 어드벤트 칠드런


그렇다면 왜 굳이 PS3 세대에 와서 이 떡밥이 강화돼 왔는가? 제가 보기엔 파이날 판타지 7 이 가지는 게임으로써의 인기도 인기지만 입지가 약해진 PS3 로 인한 플레이스테이션 프렌차이즈의 위기로 인해 과거 플레이스테이션 성공 신화의 주역이자 대세였던 파이날 판타지 7 의 영광에 대한 갈망이 이 루머를 더욱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전설의 검이 위기의 시대에 각성하여 제 주인의 손을 찾아간다.. 와 같은 스토리를 꿈꾸듯이 말이죠. 현재 위기의 PS3 가 파이날 판타지 7 의 컴백과 함께 한번에 전세가 역전되는 시나리오를 바라는 것이죠. 이는 PS3 골수 유저들의 바람도 있지만 각종 매체에서 가쉽성으로 매번 그럴듯하게 분위기를 유도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나아졌지만 초기 PS3 는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


하지만 파이날 판타지 7 이 발매된다고 PS3 의 위기가 한번에 타파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파이날 판타지 7 에 대한 염원은 커지고 있는 것에 반해 브랜드 파워는 시간의 흐름속에 갈수록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기존의 유저층은 떠나고 새로운 유저층이 유입되는 현실 속에 새로운 유저들에게 파이날 판타지 7 은 어지간한 매니아가 아닌 이상 '아 그런게 있었나보다' 정도의 게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게임의 주류도 덕분에 RPG 가 범람하던 PS1 시절과는 달리 3D 액션 게임으로 탈바꿈된 상황이니 대세 역시 받쳐주질 않습니다. 하물며 파이날 판타지 13 이 멀티 발매가 되는 상황에서 파이날 판타지 7 이 PS3 독점을 끝까지 지킬지도 의문이죠.

그럼에도 파이날 판타지 7 의 리메이크가 발매된다면 PS3 세대가 가장 적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시리즈의 리메이크작들이 순차적으로 DS 로 발매되고 있고 무엇보다 파이날 판타지 7 브랜드 효과를 극대화시켜 단순히 리메이크작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기에 지금의 분위기가 가장 적당한 분위기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잊혀져 갈 것이고 오히려 기다리는 유저들도 지치고 지칠겁니다. 듀크 뉴켐 포에버가 지금 당장 나온다고 해서 과연 가쉽성 화제를 넘어 얼마나 실제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요. 파이날 판타지 7 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결정은 제작사 스퀘어 에닉스의 몫이긴 한데, 당장 눈에 보이는 여력으로는 스퀘어 에닉스가 파이날 판타지 13, 14 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은 힘들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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