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던 신성 개발사 번지를 MS 가 잡은 것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콘솔 게임 판도에 뛰어들며 행한 여러 방책 중 가장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헤일로는 21세기 최고의 게임 프렌차이즈로 자리잡았고, MS 는 XBOX 암흑기에서도 헤일로가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번지는 헤일로 트릴로지를 마감하며 헤일로 프렌차이즈 소유권을 포기하면서까지 MS 로부터 독립했지만 번지와 헤일로를 분리해 생각한다는건 적어도 팬들의 입장에선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MS 는 이에 대한 완충책으로 번지를 떠나보내며 두개의 헤일로 외전 게임을 제안한다. 이미 작년에 발매된 <헤일로 3 ODST> 와 최근 발매된 <헤일로 : 리치>. <헤일로 : 리치>는 번지가 헤일로 팬들에게 고하는 마지막 작별인사인 셈이다.



시리즈의 시작점으로 회귀한 안녕 무대

<헤일로 : 리치>는 헤일로 시리즈 메인 스토리라인의 배경에 포함된 리치 행성의 몰락을 소재로 한 일종의 프리퀄 게임이다. 프리퀄이라곤 해도 <헤일로 : 컴뱃 이볼브드>와의 컨셉상 시간차가 일주일밖에 나질 않아 헤일로 시리즈의 시작점과 동일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헤일로 : 리치>는 인류와 외계인 코버넌트와의 전쟁이 시작된 후 인류가 맞은 최대의 위기이자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고 하는 리치 행성의 몰락을 무대로 하고 있다. 리치 행성의 몰락 시기가 헤일로 시리즈의 시작과 맞물린다는 것과 리치 행성 몰락이 가지는 설정상 중요성 등은 번지가 헤일로 시리즈와의 작별을 고하는 기념작으로 택하기에는 분명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덕분에 소설과 함께했던 헤일로 세계관의 일부가 <헤일로 : 리치>의 등장으로 붕괴되었다고 한다)


유저는 특수 병력인 스파르탄으로 구성된 노블 팀의 새 맴버로 합류해 연락이 두절된 통신 중계소를 정찰하다 리치 행성을 침략하기 시작한 코버넌트 부대와 마주치게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코버넌트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리치 행성의 몰락 과정 중 방어와 대피, 정보 파기 등을 위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저는 여타의 FPS 게임에서는 경험하기 쉽지 않은 헤일로 시리즈만의 탁트인 무대의 광활함을 만끽할 수 있으며, 인류가 강력한 외계 세력 코버넌트에 대항하기 위한 유일한 희망을 헬시 박사로부터 건네받아 리치 행성 외부의 인류에게 전달해야 한다.


시리즈가 최초로 선보인 자동 체력 보충 시스템은 <헤일로 : 리치>에서도 여전하며, 전투 중 필드에 떨어진 각종 화기를 교체해가며 사용할 수 있다. 동작 시스템의 특이 사항이라면 대쉬나 무적 방어, 부스터를 통한 공중 강하와 같은 특수 동작들을 필드에 떨어진 무기를 줍듯이 개별 홀로그램을 주워서 유저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놨다는 것이다. 물론 캠페인 미션 상 반드시 필요한 특수 동작 홀로그램은 유저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치해놨기에 진행상의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또한 잠입 게임에서나 주로 선보여온 뒷치기(?) 시스템이 적용되었는데, 적들의 눈치가 워낙 빠르기도 하고 미션 전개 구성상 캠페인 미션에선 뒷치기를 성공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다양한 탈 것의 존재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출현하면서 <헤일로 : 리치>가 제공하는 탁트인 공간의 묘미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시리즈 최초로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에서의 도그 파이팅 경험을 제공한 것은 이번 <헤일로 : 리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탈것과는 달리 도그 파이팅은 그 특수성 때문인지 매우 긴 시간동안 이어지며, FPS 게임의 일부분을 채우는 요소 답지 않게 제법 재미있게 구현되어 있지만, 정말 잘 만들어진 본격 비행 슈팅 게임에 비해서는 박진감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헤일로 스케일의 남다름과 일말의 아쉬움

앞서 잠깐 언급했던 탁트인 무대의 광활함은 헤일로 시리즈와 <헤일로 : 리치>가 선보일 최대 장점이다. FPS 게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무대 스케일을 선보임으로써 유저들을 압도하고 그 안에서 유기적인 플레이를 유도해 유저가 무대에 완전 녹아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일반 보행 이동과 탈 것을 교차하며 캠페인을 진행하는 유저는 탁트인 필드의 크기와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될 것이며 스토리의 진행에 따라 변화하는 리치 행성의 모습은 절박함과 일종의 사명감을 유저 스스로 느끼게 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간혹 나타나는 이벤트 씬에서 더욱 증폭되는 영상미와 이를 북돋아주는 음악의 조화는 가히 일품이다.


단, <헤일로 : 리치>의 영상미는 엄밀히 보자면 좀 싱겁다. 이는 연출의 부족함에서 나타나는데, <헤일로 : 리치>가 제공한 무대로부터의 사명감과는 달리 무대를 디테일하게 구성하는 실체인 적들의 등장 패턴의 다양함이나 매우 특별한 상황의 제공이 부족하고, 이벤트 씬들의 연출이 압도적인 무대에서의 임무 완수 쾌감을 느끼기엔 멋진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싱겁게 끝나버리는 경향이 있다.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2>에서 인피니티 워드가 꽉 짜인 연출로 철저하게 '즐기는' 즐거움을 선사했다면 <헤일로 : 리치>는 철저하게'느끼는'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할까. 이는 두 게임의 구조적 차이점에서 기인한 것이긴 하지만, 이벤트 씬마저 강약의 조절없이 다소 싱겁게 연출된 것은 특히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엔딩 씬은 묘한 여운과 함께 그나마 다른 씬에 비해선 신경을 썼다는게 느껴지지만.. (이는 <헤일로 : 리치>가 필드 전투 자체의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분명 별개의 이야기)


<헤일로 : 리치>의 AI 는 매우 훌륭합니다만, 문제는 훌륭한 AI 가 적들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유저의 노블 6 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다른 노블 팀원들이나 노블 팀을 따르는 다른 아군 유닛의 AI 는 너무나도 형편없어서 전투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어느새 던져놨는지 모를 수류탄과 아군의 총알 세례를 교묘한 루트로 피해와 유저를 사정없이 후려패는 엘리트 질럿의 칼날은 정말 무섭다. 덕분에 게임의 난이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고, 아군 AI 의 멍청함에 반하는 아군 유닛의 무한 체력은 높은 난이도로 인해 수없이 봐야 할 게임 오버 장면에서 유저의 시체를 등지고 멍청하게 싸우고 있는 아군 유닛을 한동안 지켜봐야 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해준다.


텍스트 한글화를 동반한 한글 음성 더빙은 환영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한글 음성의 볼륨이 게임의 다른 사운드 음성 볼륨과 적절히 매치되지 않아 그 색이 조금 바랜 면이 없잔아 있다. 또한 화면에 잔상이 나타나는 단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화면에 잔상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이를 식별하지 못했으나, 이와 관련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저라면 분명 거슬림이 있을 것이다. 멀티플레이의 경우 ODST 에서 선보였던 사생결단 모드가 업그레이드 됐으며, 싱글 플레이와 멀티 플레이 모두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게임 코인과 경험치를 통한 진급으로 장비를 구입해 자신의 스파르탄을 강화 할 수 있다.

<헤일로 : 리치>는 마지막으로 헤일로 시리즈에서 손을 떼게 되는 번지에 대한 여운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묘한 여운과 함께 유저의 감성을 자극하며 막을 내린다. 이는 시리즈 팬들만이 알아 볼 수 있는 이스터애그 요소의 삽입과 함께 그 여운이 증폭되기도 하지만, 외전인 만큼 헤일로 시리즈를 즐기지 않았던 유저도 충분히 게임에 집중 할 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잘 꾸며져 있다. 올 가을 XBOX360 라인업을 대표함은 물론 번지의 아쉬운 작별을 기념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 타이틀이 분명하다.

게임명 : 헤일로 : 리치 (Halo : Reach)
장   르 : FPS
개발사 : 번지
유통사 : MS
플랫폼 : XBOX360
발매일 : 2010. 09. 14. (국내 포함)
공식 홈페이지 :  Halo : Reach 공식 홈페이지

평가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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