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의 윈도우 95 가 공개된 것은 95년의 일이지만 이전까지 운영체제로 자리매김했던 DOS 의 자취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윈도우 98 이 공개된 후의 일입니다. 윈도우 95 자체가 워낙 불안한 운영체제였고 특히 일반 가정에선 윈도우 환경의 프로그램이 사용할 일이 게임 외엔 반드시 필요한 환경이 아니었기에 그 전환이 늦게 진행되었으며 PC 자체가 지금처럼 모든 일에 통용되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국내 게임 구동 환경 역시 윈도우 95 가 공개되었어도 여전히 한동안은 DOS 를 기반으로 했었고, 97년에 들어서야 겨우 윈도우 구동 환경이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게임들이 97년을 기점으로 윈도우로 발매된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손노리의 포가튼 사가를 포함해 삼국지 천명, 어쩐지.. 저녁 등 몇몇 게임들이 DOS 기반으로 발매되었습니다. 그간 밀렸던(?) 윈도우 환경으로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이기 때문에 이같이 DOS 환경으로 발매된 게임들은 알게 모르게 원성을 들어야 했습니다.

임진록 (1997)

개발 : HQ 팀
유통 : 삼성전자

스타크래프트를 전후로 RTS 라는 장르가 국내에서 메인 장르로 서서히 자리매김해나갈즈음 등장한 국산 RTS 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임진록 시리즈의 첫 작품. 국산이라는 출신 성분(?)과 조화를 이루는 임진왜란과 이순신이라는 소재 덕분에 그것만으로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조선을 침략한 왜의 공격을 무찌르는 것이 당연한 목표지만, 더불어 왜를 선택해 조선 침공 시나리오를 즐길 수도 있어 반민족적 변태(?)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워크래프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외형과 시스템을 취하고 있으며, 조선과 왜 두 진영의 유닛 특성이 뚜렷이 나뉘지 않는 등 시리즈 첫 작품이자 개발사 HQ 의 첫 작품인지라 부족한 면이 이래저래 눈에 밟히는 게임이며 특히 캠페인의 난이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 특이점이지만 더불어 개발사의 의욕 역시 이래저래 눈에 보이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카르마 (1997.06)

개발 : 드래곤 플라이
유통 : SKC

최근 스페셜 포스 2 를 내놓는등 국내 FPS 전문 개발사로 입지를 점점 확고히 다지고 있는 드래곤 플라이의 국내 최초 3D RPG. 탑뷰 or 쿼터뷰의 2D 배경에 3D 렌더링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이 시기 대다수의 국내 RPG 와는 달리 배경과 캐릭터 모두 폴리곤으로 표현되어 색다른 시도가 돋보였고, 그 점이 시장은 물론 업계에서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해외 수출도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최근 스페셜 포스 2 를 공개한 드래곤 플라이의 초기 기반을 단단히 다지도록 해준 게임이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얄궂은 운명에 대항하는 주인공과 냉소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판타지를 근본으로 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은근히 당시 폴리곤 RPG 의 대명사로 단번에 세계 시장을 군림한 파이널 판타지 7 과 은근히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따지고보면 배경은 판이하지만 게임 분위기나 캐릭터성 등이 비슷하죠. 두 게임의 출시가 그리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파이널 판타지 7 이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긴 합니다.


1편은 판타지 RPG 지만, 이후 온라인으로 플랫폼을 옮겨서는 전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미래 배경의 FPS 게임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지난해 카르마 온라인의 후속작 카르마 리턴즈가 서비스를 개시했고 역시 패키지 게임 카르마와는 연관성이 없습니다.

포가튼 사가 (1997.11)

개발 : 손노리
유통 : 판타그램

다크사이드 스토리 다음의 손노리 작품으로 90년대 후반 국산 게임사에서 여러모로 가장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게임. 원래 96년 말 발매를 목표로 했던 게임이지만 거듭되는 발매연기로 1년이 늦은 97년 말에나 겨우 세상에 나오게 되어 국산 게임 발매 연기사(?)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덕분에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기도 했구요.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그렇고, 90년대 초중반의 경우를 보더라도 고작 발매가 1년 늦어진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싶기도 하지만 당시의 문제는 초반엔 3개월 단위로 발매일을 미루다가 후반들어서는 한달 단위로 발매일을 연기해 기다림을 지치게 했다는 겁니다. 차라리 속시원하게 연기 기간을 넓게 잡았으면 좋았을텐데 '내일, 내일, 내일' 하며 기다리는 팬들을 짜증나게 했다는거죠. 그만큼 개발사인 손노리나 유통사 판타그램은 그들 나름대로 속이 타들어갔을 상황이란 것이 눈에 보이긴 합니다.


한달, 짧게는 일주일 단위로 발매 연기를 거듭하다 발매된 포가튼 사가는 발매 연기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을 큰 문제가 터집니다. 그 삽질(?)을 하며 발매된 게임이 알고보니 버그 덩어리로 제대로 게임을 진행하는게 불가능한 미완성작이었던거죠. 정품 유저조차 인증을 할 수 없는 버그부터 시작해서 게임 내 수도없이 많은 버그들로 인해 유저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하게 되고 많은 손노리의 안티팬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발매 후 반년이 넘는 기간동안 손노리는 수많은 버그 패치들을 공개했지만 패치가 새로운 버그를 낳는 경우도 발생하는 등 포가튼 사가의 버그는 완전 수정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약 7년뒤 발매된 손노리 패키지의 로망 버전에서조차 버그가 발견된다고 합니다. 버그는 국산 패키지 게임들을 논함에 있어 대부분의 게임들이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공통 악재이긴 하나, 포가튼 사가의 버그 수준에 비하면 모두 명함도 못내밀 수준으로 국산 게임 버그 치명타의 양대 산맥 (훗날 소프트맥스의 마그나카르타) 으로 기억됩니다.


게임의 외형은 일본 RPG 를 연상케 하지만 전반적 게임 구조는 서구식 RPG 를 근간으로 한 퓨전(?) 게임이라는 것이 포가튼 사가의 특징입니다. 파티 구성의 자유나 수많은 프리 시나리오의 존재는 분명 많은 유저들이 이 게임을 기대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요인이었고, 버그 문제만 아니었다면 그런 유저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당시 게임 치고는 컨텐츠가 매우 풍부해 그만큼 경쟁력이 높은 게임이었죠. 버그와는 별개로 밸런스 설정도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게임의 재미만큼은 확실했으며 그나마 버그 문제가 정리된 후엔 불신만큼 만족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던 게임입니다. 국산 게임 최초로 1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94년의 어스토만해도 1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 진위는 정확치 않습니다. (허나 90년대 후반 가장 성공적 판매량을 기록한 게임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판타랏사 (1997.12)

개발 : 소프트맥스
유통 : 하이콤

90년대 중후반을 대표하는 개발사였던 소프트맥스인 만큼 당시 새롭게 떠오르는 트렌드였던 RTS 에 손을 댔으니, 문제작 판타랏사가 탄생합니다. 소프트맥스의 RTS 라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유저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지요. 소프트맥스의 게임 답게 게임 외형은 훌륭한 수준이었지만 수시로 게임이 다운되버리는 치명적 버그와 멍청한 유닛 AI, 멀티플레이 (스커미쉬 포함) 부재 등의 문제로 유저들이 많은 불만을 가졌습니다.


판타랏사는 명백한 실패작이며 소프트맥스는 이후 창세기전 시리즈를 메인으로 한 RPG 게임 개발에 집중했습니다만 판타랏사의 시도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캠페인 시나리오조차 주요 오브젝트들을 제외하면 매번 랜덤으로 생성되는 맵 시스템이나 조합을 통한 유닛 생산 등 색다른 시도가 돋보일 수 있었던 아쉬운 게임이죠. 만약 소프트맥스가 판타랏사나 이후라도 지속적인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이었다면 지금처럼 메인스트림에서 잊혀진 개발사가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1998)

개발 : TG 엔터테인먼트
유통 : ?

이명진씨의 90년대 대표 인기 만화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을 원작으로 하는 파이널 파이트, 던전 앤 드래곤과 같은 횡스크롤 거리 액션 게임. 비록 게임이 발매된 98년은 원작 만화가 종결된지 시간이 좀 흐른 뒤라 원작의 후광을 톡톡히 봤다고 할 순 없으며, 오히려 역으로 게임의 인기 덕에 원작 만화를 모르던 이들이 만화를 찾게 만들기까지 했을만큼 당시 유저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액션 게임입니다. 단, 패키지 판매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던 것 같진 않고 당시 게임 유통의 흐름(?)이었던 잡지 번들 제공의 덕을 단단히 본 게임이라 할 수 있죠. 덕분에 개발사나 유통사에게 큰 이익이 돌아가진 않았겠지만..


어쩐지.. 저녁은 여러모로 균형이 잘 잡힌 액션 게임이었습니다. 2D 그래픽으로 특별히 뛰어나진 않았지만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린 투박한 그래픽과 뛰어난 조작감, 적당한 밸런스, 특히 유저들에게 어필했던 것은 타격감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시각적 효과와 어우러지는 호쾌한 사운드는 어쩐지 저녁이 발매된 시기였던 90년대 후반은 물론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유저들 사이에서 액션 게임의 타격감을 논하는데 빠지지 않고 거론되게 할 정도로 유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물론 조작감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단지 시각 효과와 사운드만으로 유저의 손맛을 만족시키는 타격감을 주지 못했겠죠.

창세기전 외전 : 서풍의 광시곡 (1998.03)

개발 : 소프트맥스
유통 : 하이콤

소프트맥스와 창세기전 시리즈의 높아진 위상이 굳어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외전 게임. 자동 시나리오 씬과 전투 씬의 구분이 명확히 나뉘는 SRPG 인 창세기전 본 시리즈와는 달리 캐릭터가 필드를 돌아다니다 적과 조우하게되면 전투에 돌입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RPG 게임이며 전투 시스템은 SRPG 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외전이긴 하나 스토리의 흐름은 본편의 50년 후로 본 시리즈와 이어지며 이후 외전 2 나 창세기전 3 의 스토리 역시 서풍의 광시곡을 근간으로 이어져갑니다. 게임 형식이 약간 달라서 외전이라 칭한 것 같은데, 시리즈 내 입지는 본 시리즈와 대등하게 중요한 위치를 가지는 작품이죠.


화려한 그래픽과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안으로 한 방대하고 매력적인 시나리오는 당시 유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시나리오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시나리오의 원안으로 한다 밝히고 있지만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안으로 한 용대운의 무협 소설 탈명검에 보다 가까운 모습을 보여줘 유저들 사이에 표절 제기로 비난을 많이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가와 개발사간의 시비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창세기전 2 역시 무협 소설 표절이 제기됐었기에 이래저래 개발사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창세기전 2 가 밸런스등 게임성이 좋은 게임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서풍의 광시곡 역시 여러가지 게임성에 대한 지적이 많았고 오직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이벤트 씬이 인기의 원인이였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죠.


가장 크게 지적받은 부분은 필드의 적 조우율로, 너무 잦은 전투 돌입으로 플레이 타임을 억지로 늘리려는 수작이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는데요. 그런 극악의 조우율 때문에 세 발자국 게임 (필드에서 세 발자국 움직이면 전투로 돌입한다는 이유) 이라 부르던 한 유저가 생각나네요. 뭐 이런 세 발자국 게임은 서풍의 광시곡 뿐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PS용 일본 RPG 게임에도 흔하긴 했습니다. 인기작 중에선 테일즈 오브 데스티니도 그런 경향이.. 그 외 장비 내구도 시스템이나 극악 조우율과 연계되는 넓은 맵은 많은 유저들을 지치게 한 요소였구요.


2000년에 들어 일본의 RPG 전문 개발사 팔콤이 소프트맥스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은 뒤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리메이크된 팔콤의 게임 역시 일본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습니다. 일본 시장의 취향에 맞게 캐릭터 일러스트나 일부 설정이 변경되긴 했으나 큰 줄기의 시나리오나 게임 시스템은 큰 변화가 없었는데요. 팔콤에 의해 게임성에 연관된 여러 문제점이 대폭 수정된 덕분에 국내판에 비해 훨씬 쾌적하게 바뀌어서 이 문제로 또 한번 소프트맥스의 개발력이 조롱받기도 했습니다.


서풍의 광시곡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게임성을 감안하더라도 유저들에게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국산 게임 중 하나로 꼽힙니다만, 정작 소프트맥스는 서풍의 광시곡 유통사 하이콤이 부도가 나버려 성공의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소프트맥스는 디지털 에이지라는 자체 유통사를 설립했으며 엘피앙이라는 게임 전문 쇼핑몰을 2000년대 초반까지 성공적으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패키지 시장의 붕괴 이후 이들의 존재는 사라져버렸지만..

하르모니아 전기 (1998.07)

개발 : 막고야
유통 : 웅진미디어


97년 막고야가 개발한 제 3 지구 카인이란 RPG 의 후속작. 전작과 마찬가지로 카인이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RPG 이며 턴제 전투, 2D 배경에 렌더링 캐릭터 조합이라는 흔한 포멧을 취하고 있습니다. 전작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에 반해 시리즈 명을 변경 후 인지도가 많이 상승됐으며, 그 인기에 힘입어 후속작까지 계획되었지만 발매는 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등장 캐릭터들의 대사와 함께 출력되는 일러스트들이 당시 꽤 호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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