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Story

추억의 국산 패키지 게임들 : PC 플랫폼의 정착, 슈팅의 시대

hk. 2009. 10. 19. 11:54
8비트 PC 인 MSX 와 애플로 게임 제작 태동이 일었던 80년대를 넘어 90대에 들어서면서 국내 게임 제작 플랫폼은 서서히 MS DOS 를 기반으로 한 IBM-PC 로 넘어오게 됩니다. 기존의 플랫폼이었던 애플이나 MSX 는 닌텐도의 패미컴이나 세가의 마크2 와 같이 게임 메인스트림 시장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는 했으나 '게임만을 위한 게임 콘솔' 이 아닌 교육, 사무용 PC 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영역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IBM-PC 로 대체되며 국산 게임 제작의 플랫폼 역시 자연스레 IBM-PC 로 넘어오게 된 것이죠.

게임은 예나 지금이나 '애들이나 하는 놀이' 란 인식이 강하고 그 인식이 8~90년대엔 두말할 것 없이 투철했으니 '게임기' 라는 것에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자금 동원력이 부족한 애들이 값비싼 게임기를 구입할 확률보단 그나마 교육용이란 명목하에 각 가정에 보급될 PC 를 다루는 게임 소비층을 노리게 된 결과입니다. PC 는 실제로 애들에게 교육용으로 사용되는 시간보단 게임기로 사용된 시간이 더 많았고 그 게임조차 영어 공부라는 핑계로 어느 수준은 묵인될 수 있었습니다. 게임기를 사주느니 PC 가 성인들의 용도로도 이래저래 필요했었구요. 이렇게 결정된 플랫폼은 10년을 넘도록 PC로 쭉 이어져 어찌보면 현재의 온라인 게임 강국의 근간을 이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온라인 게임 부흥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빠른 네트워크 인프라의 보급이지만 이 자원이 온라인 게임으로 바로 활용할 수 있었던 그간 쭉 PC 라는 플랫폼으로 제작되어 온 국내 게임 개발 역사의 바탕과 경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죠.

어쨌든 90년대 초반 IBM-PC 로 출시되기 시작한 국산 게임들은 괜찮은 성과를 내며 국산 게임 개발의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이 시대에 가장 대표적 개발사가 미리내 소프트와 소프트 액션입니다. 두 제작사의 대표작은 그날이 오면 시리즈와 폭스 레인저 시리즈로 모두 슈팅 게임이었으며 그 외 막고야나 트윔 역시 초기 국내 게임 개발사로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습니다.

세균전 (1992)
개발 : 막고야
유통 : SKC


국내 최초의 VGA 컬러 게임이라고 알려져 있는 퍼즐 대결 게임입니다. 오델로 형식의 간단한 룰이지만 중독성이 있던 게임으로 판매고가 성공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매주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지속적으로 대결 코너로 활용되면서 인지도만큼은 정말 높았던 게임입니다. 워낙 많은이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지라 잊을만하면 후속작이 슬금슬금 발매되었고 막고야란 원로 개발사를 대표하는 게임입니다. 같은 해 슈퍼 세균전이란 후속편이 나오기도 했으나 그 차이가 뭐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_-;)

자유의 투사 (1992)
개발 : 미리내 소프트
유통 : 동서게임채널

MSX 로 그날이 오면 2 를 발매한 바 있는 미리내 소프트의 IBM-PC 첫 작품으로 마찬가지로 슈팅 게임입니다. 미리내 소프트의 대표작인 그날이 오면 시리즈가 횡스크롤 슈팅 게임인 것에 반해 자유의 투사는 종스크롤 슈팅 게임으로 같은 해 발매된 소프트액션의 폭스 레인저와 경쟁 구도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유의 투사가 좀 더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인지도 면에서는 폭스 레인저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입니다. 91년까지 만 해도 운명의 결전이란 제목으로 유저들에게 알려졌지만 정작 발매는 자유의 투사란 제목으로 됐습니다. 훗날 미리내 소프트는 운명의 결전이란 제목의 슈팅 게임을 95년에야 발매했고 자유의 투사와 마찬가지로 종스크롤 슈팅 게임이었습니다. (운명의 결전은 2편까지 제작되었습니다) 국내 게임 업계에선 최초로 프로젝트 투자를 받아 제작되었다고도 하며 그것 때문에 제작진이 SKC 로부터 적지않은 압박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폭스 레인저 (1992)
개발 : 소프트액션
유통 : SKC

참 여러가지로 '최초' 라는 수식어를 많이 써먹었던 소프트액션의 폭스 레인저입니다. 횡스크롤 슈팅 게임으로 앞서 말씀드렸듯이 자유의 투사와 경쟁 구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승자는 폭스 레인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초기 국산 게임 제작 환경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소프트액션의 첫 게임이며 이후 소프트액션의 슈팅 제국(?) 향보를 결정지은 게임입니다. 상당히 어려운 난이도로도 유명하지만 최초를 남발한 마케팅과 소프트액션의 사장 남상규씨의 적절한 언론 플레이는 지금까지도 이 게임을 말할때 빠지지 않는 소재거리로 활용됩니다. (과연 이 게임이 진정으로 '최초' 인 항목은 뭐인지가 미스테리일 정도..) 남상규씨는 개발과 함께 게임 음악이란 장르로 유저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으며 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게임 음악 장르적 측면에선 공로를 인정 받을만 합니다.

박스 레인저 (1992)
개발 : 소프트액션
유통 : SKC


폭스 레인저의 성공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발매된 슈팅 게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으로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폭스 레인저와 같은 횡스크롤 게임으로 주인공의 기체나 적 모양, 스테이지 배경이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 폭스 레인저 클론이라고 봐도 별 무리가 없습니다. 단, 역시나 장사를 좀 아는 소프트액션은 '최초의 국산 음성 지원'이라는 모토를 내세워 게임에 음성을 삽입했고 폭스 레인저만큼은 아니지만 꽤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폭스 레인저가 정통파 였다면 박스 레인저는 코믹성 캐릭터를 내세운 게임이었고 박스 레인저의 후속작이자 횡스크롤이 아닌 45도 기울어진 종스크롤 게임이었던 '박스 레인저 리턴즈' 발매를 계획했지만 실제 발매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폭스레인저가 그라디우스라면 박스레인저는 파로디우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파더 월드 (1992)
개발 : 트윔
유통 : ?

국산 게임 최초의 어드벤쳐 게임으로 게임의 수준과는 별개로 아케이드 게임 위주의 국내 게임 제작 판도에 큰 분수령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게임입니다. 어드벤쳐 게임이라고는 하나 정통 어드벤쳐 스타일은 아니고 90년대 초 큰 인기를 얻었던 어나더월드 - 플래쉬 백 으로 이어지는 횡스크롤 액션 어드벤쳐 게임으로 게임성도 그다지 좋지 못했고 게임 설정도 많이 엉성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폭스 레인저 2 세컨드 미션 (1993)
개발 : 소프트액션
유통 : 금성 소프트웨어


폭스 레인저와 박스 레인저로 국내 게임 개발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된 소프트액션이 맘먹고 크게 한번 놀아보자(?!)는 취지로 발매된 폭스 레인저 2. 소프트액션이 맘먹고 벌여놓은 게임인 만큼 발매전부터 대대적인 홍보가 행해졌고 폭스 레인저의 후속작인 만큼 유저들의 기대도 상당히 컸던 게임이었는데 막상 발매 후 제대로 실행도 제대로 안되는 버그 뿐 아니라 게임 자체도 사전에 홍보된 내용과는 전혀 딴판의 형편없는 게임이어서 유저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습니다.

프롤로그 영상의 비주얼이 제법 강렬한 면이 없잔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엉성했고 횡스크롤, 종스크롤, 입체 스크롤 의 다양한 스테이지 구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게임성이 최악이었고 볼륨 역시 작았습니다. 더불어 이 엉성한 게임이 발매된 개발사와 유통사간의 갈등, 개발사 내부의 부조리 등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유저들의 소프트액션이란 개발사에 대한 반감과 커지고 소프트액션은 재기 불능에 빠지게 되며 한동안 뜸하다가 90년대 중반들어 랑그리사 시리즈 등의 콘솔 게임 컨버전을 연달아 내놓게 됩니다.

그날이 오면 3 드래곤 포스 (1993)
개발 : 미리내 소프트
유통 : 소프트타운


그날이 오면 2 로 국산 슈팅 게임의 지평을 열었던 미리내 소프트지만 폭스 레인저의 소프트액션에게 잠시 밀렸던 한을 완전히 풀게 해줬던 게임이 바로 그날이 오면 3 입니다. 현재까지도 많은 팬들이 초창기 국산 게임의 역작 하면 당연시 떠올리는 게임으로 그날이 오면 시리즈가 오랜 생명력을 가지게 해주고 지금까지 추억되는 게임입니다.

전편과 마찬가지의 횡스크롤 슈팅 게임으로 사양을 타지 않는 가벼움에 비해 화려한 그래픽 효과와 여태까지의 국산 슈팅 게임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짜임새 있는 스테이지 구성과 연출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수준 높은 배경 음악으로도 당시 팬들에게 기억되며 사실상 국산 슈팅 게임 중 최초의 '제대로 즐길만한' 혹은 '어디가서 슈팅 게임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전까지의 슈팅 게임들은 국산이라는 애국심에 기댄 판매 효과를 올렸을 뿐 냉정하게 보면 여타의 슈팅 게임들에 비해 게임성이 많이 쳐졌다고 봐야..)

피와 기티 (1993)
개발 : 패밀리 프로덕션
유통 : SKC

여우와 거북이를 귀엽게 형상화한 캐릭터의 횡스크롤 액션 게임입니다. 그래픽도 깔끔하고 캐릭터도 귀여운데다 게임성이 훌륭하다! 라고 할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무난했던지라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네요. 패밀리 프로덕션의 두번째 작품으로 처녀작은 복수무정이라는 게임이었는데 아쉽게도 개인적으로 복수무정에 대한 기억도 없고, 넷상의 자료도 거의 전무하네요. 패밀리 프로덕션은 이후 상당히 활발한 개발 활동을 했습니다.

i2life 님의 댓글에 의한 추가 정보
피와 기티는 3번째 작품입니다. 패밀리 프로덕션의 첫 작품이 1993.4 복수무정(분노의눈물)이고, 1994.3 지구 구출작전이라는 에듀케이션 게임이 하나 사이에 있습니다. 피와 기티 출시는 1994.4 월입니다.

의적 임꺽정 (1993)
개발 : 트윔
유통 : SKC


FPS 장르의 인기가 시작된 울펜슈타인 3D 를 표방한 국산 최초의 FPS 게임입니다. 임꺽정의 선전 문구가 '세계 최고의 3D 액션 게임' 이었는데, 얄궂게도 임꺽정이 발매된 93년 말경은 FPS 역사의 가장 큰 별인 둠이 발매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묵념..)


트윔 독자 개발이 아닌 대만 ACCSEND 사에 트윔 개발진이 파견되어 공동 개발작이지만, 엔진은 울펜슈타인 3D 를 발매한 어포지로 부터 공급받았고 엔진 이외의 개발 과정에서도 트윔 측의 기여도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발매전 두 개발사간의 의견차이로 동시발매도 이뤄지지 않고 유통사 SKC 가 수입 후 한글화 형태로 발매를 했다고 합니다. 국산 게임이라고 부르기 약간 애매모호한 게임이죠. 더불어 게임성도 별로였고, 국내의 임꺽정이란 제목과는 달리 게임 내용도 임꺽정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하네요. (스크린샷은 국내 발매판을 구하기 힘들어 대만 발매판인 칠협오의 스크린샷을 첨부했습니다.)

홍길동전 (1993)
개발 : 에이플러스
유통 : SKC


IBM-PC 로 발매된 최초의 RPG 게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조선시대 소설의 친숙한 캐릭터 홍길동과 홍길동전을 소재로 하고 있어 그 인지도가 남달랐고 발매전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IBM-PC RPG 게임이란 상징성과 홍길동전 이란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게임 자체는 최악이었던지라 인기를 끌지는 못하고 조용히 사라진 게임이기도 합니다. 개발사 에이플러스는 이후 홍길동전 2 뿐 아니라 오성과 한음이라는 홍길동전과 같은 친숙한 역사 소재의 게임을 발매하기도 합니다.


이상으로 연재 2편을 마칩니다. 혹시라도 본편이나 앞으로의 연재 포스트 중 잘못된 정보가 섞여있다거나 언급되지 않은 게임 이야기나 언급된 게임의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리플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포스트에 삽입된 일부 스크린샷은 네이버 고전게임 소장카페에 게제된 스크린샷이 사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