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을 기점으로 시리즈가 비상하기 시작한 어쌔신 크리드는 유비 소프트의 메인 프랜차이즈이자 21세기를 대표하는 굳건한 게임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무난히 계속 잘 나갔으면 유저나 제작사나 모두 행복했겠지만 아쉽게도 지난해 발매된 어쌔신 크리드 : 유니티는 잘 나가던 시리즈의 재앙 수준으로 결과물을 내놨다. 게임의 시스템 변화가 가져온 불만도 불만 나름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버그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모자란 미완성이었다. 콘솔, PC 를 떠나 모든 발매 플랫폼에서 전 구간에 걸쳐 요동치는 프레임과 기괴하게 깨지는 그래픽 오브젝트, 튕김 등등.. 마치 유비 소프트라는 대형 제작사가 어쌔신 크리드라는 메인 프랜차이즈의 게임으로 내놓은 결과물로는 정말 생각하기 힘든 빅 똥을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유니티는 잘 나가던 프랜차이즈의 차기작이라는 것 이상으로 현세대 콘솔에서 발매되는 첫 프랜차이즈 타이틀이자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인류사를 뒤엎은 사건을 스토리의 시대적 배경으로 차용한 것 등 유저들의 기대를 받기에 과하게 충분했기에 실망감 역시 컷다. 꾸준히 패치가 제공되며 똥자국들이 조금씩 걷어져나갔으나 애초에 걷어내고 나왔어야 할 자국들이었기에 발매 직후 똥을 구매한 유저들의 분노와 이를 바탕으로 한 여론은 쉽게 나아지질 못했다. 유비 소프트가 어디 구멍가게도 아니고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가 지나가면 발에 체이는 흔한 프랜차이즈가 아니었기에. 



거듭된 패치가 약이 되긴 했다


똥 덩어리였던 유니티가 발매된 후 1년이 좀 넘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 플레이하기엔 괜찮을까? 유비 소프트는 유니티 발매 후 이틀만에 치명적 오류를 수정한 패치를 하루에만 3번에 걸쳐 배포했으며 전반적 안정화 버전을 내놓은건 약 한달만인 14년 12월경이고, 최종 안정화 패치는 3달만에 배포되었다. 이후엔 수정 패치는 없는 상태고 추가 시나리오 DLC 가 무료로 풀렸고 시즌 패스 결제자들에겐 자사의 다른 게임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추가 보상 정책을 내놓았다. 최종 안정화 패치가 배포된 것이 15년 2월이므로 16년에 접어든 현재 시점에서 '지금은 괜찮은가?' 라는 의문을 던지기엔 좀 부적절한지도 모르겠지만, 플레이에 대한 호기심이 있음에도 유니티의 그 높은 악명에 거부감이 들어 뒤늦은 플레이를 꺼리고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은 할만하다. (이미 지난 2월 부터..)



이는 어디까지나 만들다 만 상태의 유니티가 아니라는 의미이며, 유니티에 대한 게임적 이야기는 논외로 둔 이야기다. 또한 이후 추가 패치가 나올 것 같진 않은 상태에서 몇가지 잔 버그들이 있어 당혹스러운 면이 분명 존재하기는 한다. 개인적으로 겪은 버그라면 쓰러진 적들이나 주인공 아르노의 특정 신체가 쥐약을 먹은듯 까닥거리다가 멈추는 현상이 간혹 발생하며 얼굴은 아니지만 의상 내부의 피부 스킨이 표현이 안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살짝 드러나야 하는 피부가 표현되지 않아 유령같이 허공에 떠있는 듯한 형상의 NPC 들이 존재한다. 다만 튕김 현상이나 프레임 드랍, 오프젝트의 심각한 이탈 현상이 발생하진 않는다. 최종 안정화 패치 이후의 유니티는 몇몇 버그가 잔재해 있으나 적어도 개발진이 내놓으려 한 완성본의 형태는 갖춰진 셈이다.


실망스러운 시나리오, 불친절한 시스템


유니티의 시나리오 배경은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기다. 신 구의 체제 변화와 권력 흐름의 역전이 이만큼 극심했던 시기가 역사를 통틀어 드물며, 이는 어쌔신 크리드라는 프랜차이즈가 프랜차이즈 전체 시나리오의 메인으로 잡아온 기사단와 암살단의 대립을 토대로 한 음모론 기반의 역사 재해석을 드라마틱하게 짬뽕시키기엔 너무나도 궁합이 잘 맞아 떨어지는 시기인 것이다. 하지만 유니티의 결과물은 허망하다. 기사단과 암살단은 이 대변혁의 시기에 뭔가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초중반까지 떡밥만 던져지는 수준이라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유저가 플레이하는 아르노라는 주인공과는 전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게임 스토리의 흐름은 아르노 개인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를 이해하려해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 개인사와 혁명사가 따로 놀아도 너무 따로 논다는 것인데, 암살단의 행적과는 별개로 주인공 아르노의 개인이 이야기 속에서 혁명사가 엮여 있으면 시대의 흐름 묘사나 재해석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그런 것도 없고 시대적 배경은 병풍같은 배경에 불과하다. 개인사를 진행하다보니 공포정치가 실시되고 있었고, 나쁜놈인데 내 원수의 위치를 알겠네? 하고 찾아가는 수준으로. 찾아가서도 정말 원수의 위치만 알아내려고 한다. 어쌔신 크리드의 음모론 기반 핵꿀잼은 유니티에서 찾아볼 수 없다.


루이 16세 처형 장면, 주인공은 여기에 볼 일이 있을 뿐 사건에는 관심 없다.


암살단과 주인공의 이야기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만큼 현대 파트의 스토리도 없다. 없는 수준이 아니라 없다. 그저 DNA 분석 시스템 조작을 위한 농담따먹기 수준의 이야기들이 간혹 오고갈 뿐. 그렇다고 게임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아르노 개인사의 스토리만 놓고 따졌을 때 재미있는가? 그렇지도 않다. 복수를 하고 싶은 캐릭터의 감정만큼은 이해가 가지만, 그 과정에서 캐릭터간의 관계 묘사나 행동의 당위성, 내막의 실체 등 모든 것이 단면적이고 생략적이다. 개인사 속에서라도 얽히고 섥히는 내막이라는 것이 있고 그 내막을 풀어가는 묘사의 디테일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매우 부족하다. 소설 같아야 할 시퀀스 전체가 누가 나쁜놈이라더라. 그래서 누굴 암살했다. 그리고 어딜 방문했다. 수준으로 결과표만 나열된 것 같은 수준이다. 



유니티는 게임 시스템적으로 기존작들과 완전 차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으로 캐릭터의 성장으로 자연스럽게 배워나가던 각종 스킬들이 게임 진행에 따라 얻는 스킬 포인트를 모아 유저가 직접 습득할 스킬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방어구 장비가 착용 파트별로 분리되었으며 각 파트마다 등급에 매겨진 다양한 방어구를 구입해 착용할 수 있으며, 겉모양 의상은 별도로 취급되어 캐릭터 외형은 통합된 형태로 유저가 선택할 수 있다. 


멀티플레이는 미션의 목적 뿐 아니라 스킬 포인트 수집도 해야하는데..


커스터마이징이 강화된 것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닌데, 스킬 습득을 위한 스킬 포인트 수집이 싱글 플레이 시퀀스만으로는 6~70 % 의 스킬만 해제 되도록 설계되었고, 멀티플레이 미션을 병행해야 모든 스킬의 습득이 가능하다. 멀티플레이의 스킬 습득 방식은 좀 특이한데, 완료가 되면 자연히 포인트가 수집되는 것이 아닌, 멀티플레이 필드 곳곳에 배치된 포인트를 찾아서 수집해야 하므로 익명 사용자끼리의 플레이에 적합한 형태라 볼 순 없을 것이다. 




플레이가 전반적으로 전투 상황 자체가 불편하도록 변화되었다. 전투에 돌입하면 암살 능력과 연계되는 한방 필살기가 자동 발동하는 조건이 완전 봉쇄되었고 모든 것은 유저의 스킬 운용에 따라 좌우된다. 동작의 연계가 빠른편이 아니기에 시원스러운 전투보다는 주고 받으며 스킬 발동시키는 형태의 전투가 펼쳐지는데, 이게 일 대 다의 다루기 상황에 놓이면 적들이 수시로 총질을 해대며 이 데미지가 정말 아프기 때문에 버티기가 매우 힘들다. 설계된 동작과 스킬이 모두 일 대 일 상황에 초점이 맞춰진 듯한 것에 반해 전투가 걸리면 자연스레 일 대 다 상황이 펼쳐지므로 대응하기가 매우 힘들다. 결국 최대한 잠입적으로 미션을 풀어나가도록 유도되었으며 적들의 감지력이 상당하다. 



전투는 다소 투박하게 변형되었다


암살이라는 테마에 맞춰 본격 전투 상황이 어렵도록 변화된 것 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효과적인 유인 스킬이 없는등 잠입을 풀어나가기 위한 환경들이 불친절하다보니 잠입의 맛이 다소 떨어지고 자연스레 난이도는 올라가 많은 시행 착오를 겪어야 한다. 멀티플레이를 통한 스킬 포인트를 병행하지 않았다면 종잇장과 같이 무력한 주인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발각된 뒤 도망치다가 끝까지 쫓아오는 한두명을 전투로 제거한뒤 다시 잠입하는 패턴을 반복해 암살 목표에 다가가야 하는 케이스도 발생할 수 있다. 다만 1~3 명 수준의 일 대 다 전투까지는 헤쳐나갈 수 있는 수준이고 주고 받는 형태의 전투가 리듬감있게 대응하다보면 또 나름의 맛이 있어서 잠입을 전제로 소 전투만 풀어나가도록 최대한 주변 정리를 하나씩 정리하며 진행하면 어느정도 익숙해지는 면도 있다. 잠입을 유도하면서 잠입을 위한 지원이 빠진 중대한 오점이 있음은 분명하나 제작진이 어떤 플레이의 재미를 추구했는지는 대략 예상이 된다.


발군의 그래픽, 뛰어다닐 맛이 나는 필드


유니티의 그래픽은 정말 감탄스럽다. 좁게는 오브젝트의 디테일과 질감 표현이나 캐릭터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고, 넓게는 18세기 파리를 재현한 필드의 풍경, 대형 건물의 위엄과 스케일, 넘쳐나는 NPC 들까지 정말 유저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디테일의 세세한 부분만 따지고보면 디 오더 : 1886 의 그래픽 표현보다 약간 못한 감이 있지만, 유니티가 제공하는 규모까지 고려하면 유니티는 그래픽 표현 기술을 기준으로 따지면 1년이 지난 게임임에도 현재까지 발매된 게임들 중 최정상급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뛰어난 그래픽으로 무장된 필드는 음모론과 함께 어쌔신 크리드의 또 하나의 장점인 돌아다니는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넘나들며 돌아다니는 재미를 위해 주인공 캐릭터는 건물 곳곳에 철썩 철썩 들러붙으며 전작들보다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동작들로 필드를 활보한다. 다만 이 철썩 철썩 들러붙는 요소가 무작정 돌아다닐 때는 편하고 좋지만, 잠입 행동 시 디테일한 동작을 추구할 때는 의도치 않은 곳에 들러붙는 동작으로 연계되어 짜증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구현된 파리의 필드는 엄청나게 넓으며, 혁명 시기의 분위기를 그나마 느낄 수 있게 중간 중간 단두대 처형장에 몰려든 야유소리로 무장한 수많은 군중들이 밀집한 모습이 보여진다. 이 처형장에서 뭔가 무작위 이벤트가 진행중에 있었다면 좀 더 그 당시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군중이 모여들어 있는 당위성이 보장되었을텐데, 단지 단두대 근처에 군중이 밀집해있기만 할 뿐이어서 이빨빠진 모습인 측면이 있다.



주인공 아르노가 처한 시대는 프랑스 혁명기이지만 현대 파트의 요소와 결합되어 실제 아르노를 플레이하는 주인공이 20세기 2차 세계 대전이나 14세기 중세 시대 등 다양한 시대의 파리를 짧게나마 체험할 수도 있다. 현대 파트의 시나리오가 전무한 상황에서 그나마 현대 파트와 결합된 컨텐츠 중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유니티는 정말 어찌보면 참 안쓰러운 게임이다. 플레이 측면에서 보면 재미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하기엔 아쉬울 정도로 분명 재미 요소가 충분한데, 그 재미 요소를 제대로 살리기 위한 토대들이 제대로 조합되질 않거나 아예 제공이 되질 않아 묻히는 경향이 있고, 시나리오 측면에선 재고의 여지조차 없다. 시리즈의 발전적 변화를 추구하고 싶었으나 제대로 검증 및 보완을 못한 느낌이 강하달까. 그 검증 및 보완을 못해 게임 자체와는 별개로 프로그램이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으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원하던 바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체 출시된 느낌이 강하다. 발매 초기 버그 사태만 없었다면 평작 수준의 평가는 받을 수 있었겠지만, 사태가 사태인만큼 시리즈의 괴작이자 불명예스러운 망작의 위치로 인식되는 것을 벗어나긴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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